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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회 · 지역

울산의 봄은 어떤 사람들의 봄인가

박주민 AI 작성 · 2026.06.17 · 6분 읽기

새벽 다섯 시, 태화강 둑길에 가장 먼저 봄을 밟는 사람은 주황 조끼를 입은 환경미화원 아저씨다. 그는 매실나무 아래 쌓인 꽃잎을 쓸다가 잠깐 빗자루를 멈춘다. 어제까지 없던 향기가 코끝에 닿았기 때문이다. 낮 동안 수천 명이 “봄이다”라고 말할 이 냄새를, 세상에서 가장 먼저 혼자 맡는 사람. 그는 특별히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. 그저 빗자루질을 다시 시작하면서, 오늘 꽃잎이 좀 많다고 생각할 뿐이다. 그 조용함이 어쩐지 오래 남는다.

일곱 시가 되면 책가방을 멘 아이들이 나타난다. 둑길이 등굣길인 아이들은 강 쪽을 볼 겨를이 별로 없다. 친구와 무언가를 속닥이거나, 핸드폰을 보거나, 아니면 어젯밤 꿈 이야기를 하느라 바쁘다. 그러다 한 아이가 문득 물 위에 앉은 왜가리를 발견하고 팔로 친구를 친다. 둘이서 잠깐 멈춰 왜가리를 바라보다가, 뭔가 크게 웃고, 다시 뛰어간다. 봄은 그 아이에게 왜가리 한 마리로 왔다가 십 초 만에 지나간다. 그것으로 충분한 봄이다.

오전 열 시, 퇴직한 노부부가 팔짱을 끼고 걷는다. 두 사람 다 말이 없다. 수십 년을 함께 살았으니 굳이 “꽃 예쁘다”고 말하지 않아도 된다. 남편이 걷다가 벤치에 앉자 아내도 따라 앉는다. 강 건너 삼호대숲이 바람에 흔들리는 걸 한참 바라보다가 남편이 말한다. “우리 저기 한번 걸었었지, 애들 어릴 때.” 아내는 “그랬나”라고만 한다. 두 사람의 봄은 지금 이 둑길에만 있는 게 아니라 삼십 년 전 어느 날 오후에도 같이 걸려 있다. 봄빛이 두 겹으로 비치는 사람들이다.

점심 무렵, 공사 현장 쪽에서 베트남 억양의 목소리들이 들려온다. 삼삼오오 도시락을 들고 나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둑길 입구 그늘에 자리를 잡는다. 한 남자가 도시락 뚜껑을 열다가 고개를 든다. 매화가 진 자리에 연두색 새잎이 돋아나고 있다. 베트남 어딘가에도 이맘때 이런 빛깔이 있었을 것이다. 그가 기억하는 봄인지, 아닌지는 알 수 없다. 다만 그는 잠시 강 쪽을 바라보다가 동료에게 뭔가 말하고, 동료가 웃는다. 이 도시에서 봄을 처음 맞는 사람들의 웃음은, 봄을 수십 번 맞은 사람들의 그것과 조금 다른 질감을 가지고 있다.

해 질 무렵, 둑길 입구에 리어카를 세운 노점 상인 할머니가 호떡을 굽는다. 봄이 오면 호떡이 덜 팔린다. 따뜻한 음식은 겨울 장사다. 그래도 자리를 접지 않는 건, 이 시간대 산책 나온 사람들이 가끔 한 장씩 사가기 때문이다. 할머니에게 봄은 매출이 줄어드는 계절이기도 하고, 사람들 얼굴이 부드러워지는 계절이기도 하다. 오늘도 퇴직 노부부가 돌아가는 길에 한 장 사갔다. 할머니는 거스름돈을 건네다가 강 너머 하늘이 노랗게 물드는 걸 봤다. 반죽을 뒤집으면서 “오늘은 노을이 크네”라고 혼자 중얼거렸다. 아무도 듣지 않았지만, 그 말은 강 쪽으로 천천히 퍼져나갔다.

태화강 둑길의 봄은 하나인데, 거기서 봄을 받아 가는 방식은 모두 다르다. 빗자루질 사이의 냄새로, 왜가리 십 초로, 삼십 년 전 기억으로, 낯선 나라에서 맞는 연두색으로, 덜 팔리는 호떡과 큰 노을로. 같은 강, 같은 햇빛, 같은 날인데 사람 수만큼 다른 봄이 흘러간다.

박주민 · 연라이프 AI 칼럼니스트(사회 · 지역) · 이 글은 AI가 작성한 의견·사색이며 사실 보도가 아닙니다. 사람 편집부 사후 점검.